2018년 1월 21일 오전. 이모(34)씨의 마음은 어지러웠다. 충남 서천군의 작은 마을이라 평소 같으면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쯤 일도 아니었지만 발걸음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날처럼 몸과 마음이 따로 논 적은 없었다.

“혹시 저희 아버지 보신 적 없으세요.”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신통치 않았다. 아버지(57)는 이틀 전 차를 몰고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 친구를 만나거나 하면 하루 외박을 할 때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말도 없이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 부친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게다가 집을 나간 다음날(20일)은 손녀 돌잔치 날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는 손녀였다.

시간이 갈수록 이씨의 불안감은 커졌다. 가족 모두 잔뜩 어두워진 낯빛으로 허둥지둥할 뿐이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에서 이상한 걸 봤는데 말이지.” 마을 이장이 수화기 너머에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마을 입구에서 핏자국을 봤고, 거기서 4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그보다 더 많은 핏자국이 있다고 했다. “차에 치인 고라니 피인가 싶었는데, 이씨 얘기를 듣고 보니 그게 아닐 수 있을 것 같아 말해주는 거야.” 그제서야 이씨는 서천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단순 실종보다 강력사건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장 말대로 마을 입구 등에는 혈흔이 여러 군데 나 있었다. 근처 도로변과 마을 입구 수로에는 피가 묻은 물티슈 여러 장이 버려져 있었다. 두 쪽으로 부서지고 핏자국이 잔뜩 묻은 야구방망이까지 농수로에서 발견됐다.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수도 있었다. 서천과 군산, 익산까지 거의 모든 병원에 연락해봤지만, 이씨에 대한 치료 기록은 없었다. 이 와중에 마을 입구 삼거리 농로에서 신발 한 켤레가 발견됐다. 가족들은 “아버지 신발이 맞다”고 했다.

이씨가 집을 나간 19일 밤에서 20일 새벽 사이. 이씨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 댄스학원을 같이 다니면서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53)였다. 이씨가 농민회장을 할 때 다른 동네에서 이장을 하면서 안면이 트인 사이였다.

친구는 경찰에 나와 당시 행적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날 밤 군산에서 술을 마셨어요. 댄스학원에 같이 다니는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라 평소에도 자주 갔습니다. 이씨랑 해서 4명이었는데 술자리가 끝나고, 대리기사를 불러 이씨 차를 같이 타고 왔어요. 서천으로 넘어와서 금강 하구둑에 있는 주차장에서 헤어졌습니다. 전 거기 세워둔 차를 타고 집으로 왔고, 이씨도 바로 집으로 간 걸로 알고 있어요.”

경찰은 폐쇄회로(CC)TV 확인에 들어갔다. 부친의 친구 진술대로 20일 0시 35분쯤 금강하구둑 인근을 지나는 이씨의 흰색 SUV 차량이 포착됐다. 차 안에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각각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씨와 대리운전 기사일 공산이 컸다.

그런데 마을로 갔어야 할 이씨 차량은 오전 2시쯤 다시 등장해 금강하구둑을 빠져나가 군산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차 안에는 운전자 한 명뿐이었다. CCTV 화면이 흐릿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이씨인지는 가족도 알아볼 수 없었다.

경찰은 여전히 친구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었다. 사라진 이씨와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사람이었다. 진술이 구체적이었지만, 거짓일 수도 있었다. 만일 거짓이라면?

하지만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CCTV에서 이씨 차량을 졸졸 따라다니는 회색 SUV 차량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차적 조회를 통해 파악된 차주는 군산에 사는 한 30대 남성이었다. “19일 밤부터 20일 새벽 사이에 혹시 차를 몰고 나가신 적이 있습니까?” 경찰이 전화로 질문을 던졌다. “제가 운전을 한 건 아니지만, 장모님이 그 때 차를 빌려가기는 했습니다.”

경찰은 남성이 지목한 장모 두모(54)씨를 찾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두씨는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 “그날 밤이요? 차를 타고 나갔었어요.“ 경찰이 ‘그런 다음에요?’라는 듯 눈썹을 한번 치켜 올렸다.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고 혼자 바람을 쐬고 싶어서 사위 차를 빌려 서천 곳곳을 돌아다니다 왔는데, 무슨 일이죠? 당연히 혼자 운전했고요.“

경찰은 이씨와 함께 있었다는 친구의 차량 행적을 쫓아가다 또 다른 의심스런 점을 포착했다. 이씨가 술자리를 가졌다는 군산의 식당 근처, 그 곳에 두씨가 운전했다는 회색 SUV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두씨는 분명 서천 곳곳을 다녔다고 했고, 군산까지 넘어갔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차량 뒷문으로 남성으로 보이는 누군가 내리는 장면이 CCTV에 찍혀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남성은 이씨가 차를 타고 출발하자 곧바로 두씨 차에 올라 뒤를 쫓기 시작했다. 혼자 차를 타고 다녔다는 두씨 말은 거짓이었다.

“이씨 것으로 보이는 흰색 SUV 차량이 군산시에서 발견됐습니다. 불에 다 탔네요.” 인근 경찰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씨가 몰던 차량과 같은 종류였다. 불에 거의 녹아내려 형체조차 알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천만다행으로 번호판 식별이 가능했다. 예상대로 이씨 차량이었다.

이씨 행방은 묘연하고, 타고 나간 차량은 전소된 채로 발견됐다. “살인 사건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22일 경찰은 이씨가 다녔다는 댄스학원을 찾아갔다. 댄스학원 회원 명단을 조사하던 중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두씨 남편, 김모(56)씨였다. 두씨와 김씨는 20일 오전 1시 이후에 짧은 간격으로 여러 차례 서로 통화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문제의 20일 새벽 시간이었다.

경찰은 곧바로 두씨 부부의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법원은 두 사람에 대한 체포영장도 내줬다. “제가 죽이고 이씨 차를 직접 운전해 새만금지구에 매장하고, 4㎞ 정도 떨어진 곳에서 차량을 불태웠습니다.” 경찰에 연행된 김씨는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태연하게 범행을 털어놓은 김씨는 “그 사람이 저를 독살하려고 했습니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처구니없어 하는 경찰에 그는 일기장을 펴 보였다. 일기장에는 김씨가 댄스학원에서 이씨를 만나 겪었던 일들이 담겨 있었다. 이씨가 김씨에게 자주 술을 권했는데 그 술에는 병원에서 검출할 수 없는 특별한 독이 들어가 있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고, 말라 죽어간다는 내용도 구구절절 이어졌다. 그리고 이씨가 사라진 19일 김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악마가 되어야겠다’는 메모를 일기장에 남겼다.

김씨는 “이씨에게 모욕을 당해 참을 수가 없었다”는 진술도 했다. 그는 군산 식당 앞을 지나다 우연히 댄스학원에 다니는 여성 회원을 만나 이씨 등 지인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합류했다고 했다. 그곳에서 이씨가 “노린내가 풍긴다”는 말을 했고, 그 말에 ‘살인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김씨를 데리고 이씨를 묻었다는 곳으로 갔다. 김씨는 새만금 벌판 한 곳을 가리켰다. 90㎝ 정도 땅을 파내자 시신이 드러났다. 피해자 머리와 얼굴에 20곳 정도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두개골이 3㎝가량 함몰돼 있었고, 어깨와 왼쪽 아래팔 뼈도 골절돼 있었다. 군데군데 찢어진 피부, 파열된 근육. ‘둔기에 의한 다발성 손상, 과다출혈’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사건 당일 이씨 차량이 대리운전으로 서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두씨에게 운전을 시켜 뒤따르도록 했다. 금강하구둑 주차장에서 대리운전기사를 보낸 이씨가 혼자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 모습까지 김씨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오전 1시쯤 마을 입구에 도착할 때, 김씨는 이씨 차량을 추월해 앞을 가로 막았다.

차에서 내린 김씨는 품에 어린이용 야구방망이와 ‘빠루(큰 못을 뽑을 때 쓰는 연장)’을 감추고 이씨에게 다가갔다. “왜 나한테 약을 먹여. 빨리 해독제 내 놔!” 이씨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휘두르고, 방망이가 부러지자 이번엔 빠루를 꺼냈다. “해독제가 어떤 건지 빨리 말하란 말이야!” 고함이 이어졌고, 폭행도 계속됐다. 이씨가 축 늘어지고 나서야 폭행은 멈췄다.

경찰은 김씨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이씨를 죽이겠다고 마음 먹고 미행에 나선 것이며 사전에 야구방망이와 빠루 등 범행 도구를 미리 준비했던 게 그 근거다. 하지만 김씨는 인정하지 않았다. 야구방망이를 꺼내 피해자를 때린 건 사실이지만 빠루를 미리 준비해 간 건 아니라고 했다. 야구방망이에 맞은 이씨가 자신의 차량에서 빠루를 가져와 반격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땅에 떨어진 빠루를 주워 때렸다는 주장이었다. 결정적으로 당시에 사용된 빠루는 발견되지 않았다.

1심 법원은 “야구방망이 외 빠루를 준비해 사건을 저질렀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김씨 주장을 받아준 것이다. 법원은 김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했지만 검찰 구형(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망상 증상을 바탕으로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인 두씨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고 볼 수 없다며 사체 유기 방조 혐의만 적용, 징역 1년 6개월형으로 결론 내렸다.

이씨 가족들은 반발했다. 아들 이씨는 “재판에서 김씨로부터 반성하고 있는 걸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를 죽일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아직 믿고 있고, 심지어 표정마저 편안해 보였다”며 “사전에 빠루를 준비했는지 여부가 뭐가 그리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은 현재 대전고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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